Archive for the 'Literature' Category

이전과 같지 않으리

호두까기 인형 발레를 보고 왔다. 아는 음악이 많이 나온 2부가 재미있었다.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음악들은 이전에도 많이 들어왔다. 특별한 감흥은 없었는데 앞으로 한동안은 들을 때마다 발레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예전에 아바의 음악을 들을 때도 그랬다. 아바라는 가수가 있는줄도 몰랐는데 맘마미아 영화를 보고 난 후엔 뮤지컬 ost도 사서 들었다. 라스베가스에 갔을 때 직접 뮤지컬을 보기도 했다.

이전엔 관심 없던, 그냥 들리던 음악이 이제는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시가 생각난다.

김춘수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지난 가을 와우 북 페스티벌에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2권을 샀었다. 그 책에도 다름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조선 정조시대 선비 유한준의 글이라고 한다.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이전과 같지 않으리..

“‘길들인다’라는게 뭐지?” 어린왕자가 말했다.
“요즈음에는 많이 잊혀져 있는 일이지만,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여우가 말했다.
“관계를 맺는다고?”
“그래” 여우가 말했다.
“넌 아직 나에겐 수많은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소년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난 네가 없어도 조금도 불편하지 않아. 너 역시 마찬가지일거야. 난 너에게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게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조금 이해가 가는 것 같아.”
어린 왕자가 말했다.
“꽃 한 송이가 있는데… 그 꽃이 나를 길들인 것 같아…”

내년엔 어떤 것들이 나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것인가.

학생들에게 전해준 메시지

외동아들/딸 3 명
첫째 20 명
둘째 이상 11 명

지구물리공학 수강생 분포

‘정의란 무엇인가’의 마이클 샌델 교수가 하버드 학생들에 물었던 질문을 서울대 학생들에게 물었고 같은 결과를 얻었다.

한 사람의 공부 능력에는 주위 환경의 영향이 큼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아웃라이어’에도 이러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니 자기 혼자 잘 나서 여기 왔다 생각하지 말고 겸손하라 이야기 해줬다.

학생들은 공부 잘 하는 것에 대해 크게 보상해주는 사회에 태어나서 사회나 주위 환경으로부터 많이 받아왔다. 성경 말씀에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라고 나왔다. 자기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차 사회에 어떠한 기여를 해야할지 생각하고 베풀며 살라고 말해줬다.

일주일 후 내가 어떤 이야기를 했었는지 물어봤다. 20% 정도는 제대로 기억했다.

The Apology of Socrates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고발한 사람들의 고발에 대해 해명한 내용이다. 그는 자신을 고발한 사람들을 오래 된 고발자들과 최근의 고발자들로 나누고 각각의 고발 내용이 편견과 거짓이라 변론한다.

오래된 고발자들의 고발에 대한 변론은 자신이 신의 뜻에 따라 행해온 일 때문에 사람들의 미움을 사서 법정에 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해온 일이란, 자신은 아무 것도 모르니 지혜 있다고 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무언가 배우기 위해 질문들을 해온 일, 그러나 결국 지혜 있다던 사람들이 사실은 무지한 사람이라는 것을 밝혀온 일이다. 멜레토스나 최근의 고발자들이 고발한 내용 – ‘소크라테스는 범죄인이다. 청년들에게 유해하고 파멸적인 영향을 주고 국가가 인정하는 신을 믿지 않으며 다른 새 귀신을 제사지내고 있다.’ – 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거짓임을 밝혀낸다.

그러나 이러한 변론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는 결국 사형을 선고받는다. 동정을 구해 사형을 면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죄가 없다고 주장했고 결국 사형을 선고받았다. 왜 사람들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을까? 플라톤의 ‘국가’ 제 1권에 나오는 트라쉬마코스와 소크라테스의 대화를 읽어보니 이해가 되었다. 소크라테스가 사람들을 끝까지 ‘괴롭혀서’ 사람들에게 상당한 미움을 샀을것이란걸 짐작할 수 있었다. ‘소피의 세계’에 보면 알베르토 크녹스가 소피에게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소크라테스와 예수 그리스도가 유사한 점이 많다고 알려주는데,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어보니 그 말 뜻을 알겠다. 이 책에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나오지 않지만, 소크라테스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사한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여러분! 내 아들들이 성인이 되거든, 내가 여러분을 괴롭힌 것과 똑같이 그 애들을 괴롭혀서 분풀이를 해주시오. 만일 그 애들이 자기 자신을 훌륭하게 만드는 것보다도 금전이나 그 밖의 일에 먼저 뜻을 두거나 또는 하등 보잘 것도 없는데 벌써 무엇이나 된 줄로 착각하거든, 너희가 유의할 일엔 유의하지 않고 하찮은 인간들인 주제에 제법 무언가 상당한 인물이나 된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내가 여러분에게 했듯이 그 애들을 나무라 주시오.



팔로우

Get every new post delivered to your Inbox.

Join 39 other followers